담임목사님 목회방 - 성지의 현장에서 바라 본 묵상(4)

참빛교회

2015년 2월 18일 오전 08:48

새벽 4시에 잠이 깨어 오늘 아침 예배 말씀을 정리하고 창가로 가서 커텐을 열고 보니 창 밖으로 종려나무와 호수가 희미하게 보이고 있었습니다.

지난 밤 늦게 도착해서 주위를 돌아보지 못한 채로 잠이 들어서 지금 내가 갈릴리 호수 어느 지점에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판단 없이 밤을 보낸 것입니다.

사진 장비를 챙겨서 일단 밖으로 나가 호숫가를 거닐기로 했습니다.

막상 나와 보니 호텔 앞에 호수는 철조망으로 막혀 있어서 해변을 걸으려는 기대는 무너지고 작은 뱃머리에 서서 호수를 보면서 종려나무를 배경삼아 일출을 기다렸습니다. 여러번 갈릴리 호수에 왔었지만 일출을 만나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물론 골란 고원위로 떠오르는 해를 보아야 했지만 이날 일출은 붉고 깨끗하게 갈릴리 호수 위로 올라왔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던 호수와 산과 그리고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유한한 나의 인생이 얼마나 초라한 모습인가를 새삼 느껴지면서 자연의 경이로움과 하나님의 영원성 앞에 머리를 숙이며 겸손을 표했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성경에 여러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긴네렛 바다, 신약에서는 게네사렛, 갈릴리 바다, 디베랴 바다 등으로 불려졌습니다. 

남북 길이가 21km, 넓은 동서 폭이 12km, 최대 수심이 210mm 나 되는 이스라엘의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아주 중요한 생명줄입니다. 그래서 중동전쟁 때 점령한 골란 고원을 돌려주지 않는 것이 바로 물 때문입니다.

갈릴리 호수의 물 근원이 바로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갈릴리 호수를 배를 타고 예배를 드리고 주변 교회들과 가이사랴 빌립보까지 탐방하는 일정입니다. 순례 순서를 조금 바꾸어 갈릴리 호수와 호수 주변 교회들을 우선 차례로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티베리우스 항구에서 배를 타기 위해 걸어가는 팀원들의 얼굴이 한결같이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중심지이면서 풍랑 사건으로 너무 익숙하게 알고 있는 호수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번 예배를 인도한 나였지만 감회는 남다르고 마지막 예배일까? 를 생각하니 웬지 모를 쓸쓸함도 함께 밀려왔습니다.

배 사람들은 태극기까지 준비하여 애국가를 부르게 하면서 국기 계양식을 거행하게 하여 갑자기 나라사랑의 마음까지 일어나게 했습니다.




갈릴리를 항해하는 한 시간 동안 성도들의 모습에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천국백성의 모습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신선한 바람과 밝은 태양과 비취빛 호수위에 있는 내 모습도 눈부시게 황홀하게 보였습니다. 마치 주님과 동행하는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갈릴리 호수 북쪽 해변위에 갈릴리 산이 있고 그 위에는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말씀하신 팔복교회가 서 있습니다.

1939년 프란체스코 수녀회가 세운 교회로 지붕은 여덟 가지 복을 상징하여 팔각형 구조로 되어 있으며 내부는 여덟 개의 유리창에 팔복의 내용이 하나씩 라틴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산위에서 호수를 내려다보니 푸르름으로 가득 차 있는 언덕들의 모습과 군데군데 피어 있는 꽃들이 계절과 상관없이 피어 있었습니다.



예년 같으면 지금은 우기 철이고 아직은 사막처럼 삭막한 풍경이 보여 져야 하는데 올해는 비가 12월에 다 내려서 식물들이 일찍 새싹을 피우고 꽃을 피웠다고 합니다. 마치 우리를 위해 좀 더 일찍 꽃을 피워주신 하나님의 선물 같아 절로 찬양과 감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언덕을 조금만 내려오다 보면 오병이어 교회가 나옵니다. 오병이어 교회가 서 있는 곳은 기적이 일어났던 뱃세다 들판과는 거리상 떨어져 있습니다.



뱃세다 들판은 호수 가장 북편 쪽에 있습니다. 그런데 내부에 가서 보면 물고기 두 마리와 바구니에 담긴 빵은 4개입니다.

그 하나는 지금 예수님이 들고 우리를 축복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오늘 교회들이 빵 하나를 찾으려고 분주하게 뛰어 다니는데, 바로 그  빵 하나는 주님의 손에 들려져 있습니다.

늘의 교회들이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을 의뢰하고 기적을 구해야 하는 기도를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습니다. 주님은 가끔 우리를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주님의 임재와 능력을 보여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오늘의 성도들은 주님 없이도 너무나 잘 사는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기독교의 위기인 것 같습니다.


오병이어 교회에서 조금만 더 내려오면 갈릴리호수 해변의 베드로 수위권교회가 있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셨던 바위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 바위에는 “MENSA CHRISTI / 그리스도의 식탁” 이라는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2년 전에 이곳에서 베드로와 똑 같은 주님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때 “주님 다시 올 때는 분명하게 준비해서 사랑한다고 대답하겠습니다.” 라고 약속을 했었습니다.

내 나름대로는 준비하였지만 두려운 마음으로 다가 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교회당을 들어섰을 때 한 사람의 방문객도 없이 주님은 혼자서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무릎을 꿇고 한 없이 눈물 흘리며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20분 이상을 울부짖었습니다.



내 마음속에 더 큰 숙제는 주님은 사랑하는데 교회를 어지럽히는 형제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해 달라는 기도가 더 힘들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주님은 평안과 기쁨을 안기시고 미소를 지어 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은 내 평생 가슴에 채워져야 할 음성이었습니다.


갈릴리의 석양이 지면서 해변에 발을 담그고 주님을 부르는 우리의 찬양과 기도는 저 뿐 아니라 여러 명의 성도들의 가슴에 뜨거운 주님 사랑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성지순례를 계획하고 준비하여 성도들과 함께 올 때마다 걱정이 앞서게 됩니다. 그리고 제 아내와 둘 만 와서 조용한 시간을 가지고 싶은 열망이 항상 마음속에 잠재해 있었습니다. 인도자로 오면 말씀 준비하랴 사진도 찍어주랴 여러 가지 안전사고에 대한 염려 때문에 자유 할 수도 없고 매이게 됩니다. 이런 장면을 보면서 함께 오기를 잘했다는 감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조금 순례순서는 달라도 북쪽 벳세다 쪽으로 올라가면 예수님의 사역 중심지였던 가버나움이 나옵니다.



예수님 당시에 가버나움은 배우 작은 성읍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곳이 베드로의 고향이었고 몇몇 제자들의 일터였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곳을 중심으로 사역하시는 것을 매우 즐겨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이곳에서 백부장의 종을 고치셨고(마8;5-13),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셨으며(요4;46-54), 베드로의 장모도 고치셨습니다.(마8;14-17).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나와 집에 계실 때에 친구들의 도움으로 지붕을 뜯어 내려진 중풍병자를 고치셨던 곳이고(마9;1-9),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습니다.(마9; 18-26)

또 이곳에 있는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버나움에 사는 백부장이 유대인을 사랑하여 이곳에 회당을 지었다고 했습니다.(눅7;5) 그런데 회개치 않음으로 책망을 받기도 했습니다.(마11장 23절)

이곳에는 로마의 세관이 있었는데 세관에서 일하는 마태를 제자로 부르신 곳이기도 하고 세리들이 납부하는 성전세 납부에 대하여 베드로에게 가르치시며 낚시한 물고기 입에서 은전을 얻게 하시게 한곳도 이곳입니다.(마17; 24-27)

요세프스에 의하면 가버나움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막달라 라는 마을은 그 당시에 인구 4만이 넘는 큰 도시였으나 가버나움은 작은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곳은 벳산과 다메섹을 잇는 로마제국의 간선 도로상에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 국제 해안도로 이정표가 남아 있을 정도로 주요한 거점이었습니다.


이곳에는 베드로의 집터라고 알려진 곳 위에 팔각형 모양으로 지어진 기념교회가 서 있으며, 곳곳에 그 당시에 맷돌과 유적들의 잔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회당 건너편에는 동방정교에서 세운  마리아 기념교회가 예쁘게 7개의 십자가로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비잔틴 시대의 건축되었던 회당의 유적이 남아 있는데, 회당에 있는 기둥에는 기둥을 세운 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안마당에 있는 기둥에는 “재다의 자손이자 요하낫의 자손 헬포가 이 기둥을 만들었다, 그에게 복이 있을 찌어다.” 라는 아람어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순간 우리교회 머릿돌 밑에는 교회당을 지을 때 헌신한 사람들의 명단이 묻혀 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복이 있을 찌어다.” 라고 축복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이후부터 비잔틴 시대에는 성지 곳곳에 기념교회당을 짓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 나갔습니다.

황제의 어머니였던 헬레나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때 전승이나 역사적인 검증을 통해서 지은 교회당도 있지만 경쟁적으로 전설에 근거한 허구적인 이야기 위에서 건축한 기념교회당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자기의 선행을 쌓겠다는 것은 교회당 건축이라는 행위로 나타냈습니다. 그것은 천주교에서 바티칸을 건축하면서 면죄부를 팔았던 것에서 공식화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기독교에서도 선교지에 교회 하나 짓는 것을 가장 큰 덕행으로 생각하는데 그 생각은 성경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보이는 건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영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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