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님 목회방 - 성지의 현장에서 바라 본 묵상 (10)

참빛교회

2015년 3월 2일 오전 07:16

내가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것 중에 가장 낭만적인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은 성탄의 추억입니다.
새벽 송, 성탄 축하 행사, 성탄 이브 날 밤샘, 선물교환 등 헤아릴 수 없는 성탄에 대한 추억의 보고들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나는 성탄절만 되면 교회 장식을 하였는데 강대상과 입구문 쪽에 성탄 그림을 그리는 일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가장 단골로 그린 그림이 베들레헴의 풍경과 아기예수님의 탄생 장면, 그리고 동방박사의 그림, 목자들의 그림이었습니다.

 

그때 그림을 그리면서 항상 소원했던 것은 베들레헴이 어떤 곳일까?  꼭 가보아야지 하는 간절한 소원을 기도했습니다.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에 나의 첫 생각은 내가 그림을 잘못 그렸구나 하는 자책이었습니다. 6번째 방문하는 지금은 오히려 어린 시절의 성탄 행사들이 내 마음 창고에서 하나씩 연상이 되어 줄줄이 흘러 나왔습니다.

 

숙소가 베들레헴 탄생기념교회 바로 밑에 있어서 새벽 일찍 서둘러 방문했습니다.
아직 어두움이 사라지지 않아서 야경을 처음으로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그곳에 예약된 교회가 미사를 드린다고 해서 숙소로 들어와 아침 식사 후에 다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줄을 섰다고 생각했는데, 팔레스타인 경찰이 중간에서 뇌물을 받고 다른 팀을 먼저 뒷문으로 들여보내는 것입니다.

 

그 팀이 두 팀이나 되었는데 미사를 드리는 시간이 거의 한 시간이나 되다보니 우리는 두 시간 가까이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뒷돈을 주고 미사를 드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데... 억울하고 분통이 터졌지만 아람어도 못하고 이방인인 우리들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그래도 탄생장소는 구경하고 나왔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탄생장소에서 내가 느낀 나쁜 감정은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베들레헴
이라는 장소는 성경에는 매우 중요한 곳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고향이면서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은 곳이며 나오미와 보아스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후에 이곳은 예수님의 탄생한 곳이라는 것 때문에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기독교를 말살하기 위해서 아도니스 신전을 세웠으나, 326년에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 헬레나가 아노니스 신전을 허물고 예수 탄생 기념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후 이 교회당이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531년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다시 건립한 교회당이 오늘까지 그대로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입구 출입문이 아주 작고 낮아서 머리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겸손의 문) 구세주이신 주님에게 나아가려면 머리를 숙이는 겸손함을 가지고 들어가라는 뜻입니다.

 

 

교회 지하에는 라틴어 성경을 번역한 제롬이 거하던 방과 아이들의 뼈가 무더기로 발견되어서 헤롯이 사살한 아이들의 무덤으로 알려진 동굴도 있습니다.

 

 


겸손함을 가지고 진실함으로 들어갔다가 상실감만 가지고 나오는 나의 마음을 달래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두 시간이나 잃어버린 시간 때문에 오늘의 일정은 매우 급하게 움직여야만 했습니다.

특별히 오늘은 팔레스타인 서안지역에 있는 사마리아 지역으로 들어가는 날입니다. 그 동안 이곳은 금지구역이라 성지 순례객들이 갈 수 없는 장소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버스 기사도 길이 서툴러서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먼저 도착한 곳이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렸던 기브온 입니다.
 
기브온은 여호수의 정복 전쟁 시에 이스라엘을 속여 화친을 맺음으로 멸망을 피한 성읍입니다. 그 이후 아모리 연합군이 기브온을 침략했을 때에 여호수아가 군대를 이끌고 가서 아모리 연합군을 치게 되는데 그때 유명한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물러라...” 라는 성경의 말씀이 탄생한 장소입니다.
이곳은 사울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남쪽 지방에서는 다윗이 왕으로 등극하였고 북쪽 지역에서는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왕이 되었을 때에, 두 집안 싸움에서 다윗이 승리하고 통일 왕국의 왕으로 확정되었던 곳입니다.
 

 

 


지금 이곳에 남아 있는 유적은 곡식 저장소와 포도주 저장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감람나무 몇 그루가 있는 넓은 밭이 있었는데 그곳이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린 장소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곳에 서서 멀리 산위를 올려다보면 사무엘의 무덤이 있는 집이 보이는데, 이스라엘은 그곳에서 기브온을 내려다보면서 이 장소를 소유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천번제를 드리면서 솔로몬이 얻은 것은 지혜인데 이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를 열어 달라는 소원이기도 합니다. 지혜는 결국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솔로몬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곳에 서서 나의 영적 귀를 살펴보면서 솔로몬의 지혜가 임하기를 기도했습니다.
너무 많은 소리 속에 살고 있으면서 과연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분간하는 영성이 있는가를 내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성지에 지명중에 많은 논란이 되는 곳 중에 하나가 엠마오입니다.
4군데 장소가 거론되는데 장소마다 기념교회당이나 유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찾아 간곳은 엘 쿠베이바에 있는 엠마오 기념교회당입니다.
 

 

 

이곳이 거론되는 이유는 십자군 시대에 카스테룸 엠마오라는 로마 군인의 요새가 발견되었고 요세프스도 이곳을 엠마오로 기록해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비잔틴 시대의 교회 터와 로마 시대의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길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현존하는 교회당은 아주 큰 규모였으며 교회당 안에는 엠마오 도상의 제자들과 예수님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교회당 옆에 있는 예수님 당시에 길에 서서 나는 예수님의 손을 꽉 잡고 부활하신 주님을 결코 놓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성지순례를 준비하면서 표어를 “눈을 열어 보게 하시고 만나게 하소서” 라고 정했는데 바로 엠마오의 두 제자의 사건을 염두에 두고 만든 표어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실망한 두 제자가 엠마오로 내려오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은 만났는데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집에 들어가 식사를 하면서 예수님이 떡을 들어 감사 기도를 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 순간 주님이심을 알아보았는데, 홀연히 주님은 사라져 버리셨습니다. 영의 눈이 열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야 다시 예루살렘을 올라가게 됩니다.

 

지금 나는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는 인생은 아닐까?  영적으로 침체되고 내리막 인생을 걷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를 생각하면서 간절하게 주님의 임재를 구하면서 올라가는 인생으로 비약하기를 소원했습니다.
 
벧엘을 찾는 일은 매우 어려웠는데, 팔레스타인 지역은 이정표가 제대로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버스가 역 주행을 하며 위험한 순간을 맞기도 하면서 물어물어 겨우 찾아서 한참을 걸어 들어갔습니다.

 

벧엘은 족장시대부터 성스러운 제단을 쌓은 곳으로 잘 알려진 장소입니다.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았고 야곱은 여기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자는 중에 사닥다리의 체험을 하고 서원을 하였습니다. 후에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세겜에 머물었는데, 디나 사건이 터진 후에야 벧엘로 올라와 제단을 쌓았습니다.
 

 

 

 

 

사사시대 말기에는 하나님의 법궤가 길갈에서 벧엘로 옮겨와 종교의 중심지가 되기도 하였고 사무엘은 길갈과 벧엘을 중심으로 해서 이스라엘을 치리하였습니다.

엘리야도 이곳에 선지학교를 세운 것으로 보아 이스라엘의 종교 중심지였던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로보암은 북 왕조를 시작하면서 벧엘에 금송아지 제단을 만들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벧엘 유적지에는 비잔틴 시절의 지어졌던 야곱의 제단이 남아 있었고 그 앞에는 여로보암이 만들었던 금송아지 제단이 있었다고 추정하는 바위가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천년이 넘었다고 하는 고목이 앙상하게 버팀목에 기대어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 나무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품고 야곱의 사다리를 만들기 위해 또 봄을 기다리는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무를 타고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임하고 나의 사랑이 이 나무의 봄의 소원을 따라 생명처럼 하늘 높이 올라가 파란 잎 새를 피우고 싶었습니다.

나의 성전을 하늘에도 이 약속의 땅에도 남기고 싶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환상이 나타나는 교회를 세우고 싶었습니다. 내 생명을 불태워도 아깝지 않을 영원한 교회를 세우고 싶었습니다.

 

 
벧엘에서 실로 까지는 그리 멀지는 않았습니다.
실로는 이스라엘의 성막이 있었던 곳이며 엘리 제사장이 이곳에서 이스라엘을 통치했을 때, 사무엘이 이곳에서 자랐던 곳입니다. 물론 불레셋에게 법궤를 빼앗기고 엘리 제사장이 죽은 곳이기는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무엘이 자라났던 장소이기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어린 사무엘이 걸었던 이곳은 돌산이 대부분이었고 지금은 아몬드 나무가 심겨져 있었는데 작년의 열매를 거두는 자가 없어서 아직 그대로 나무에 맺혀 있었습니다.
 
실로의 유적지는 아주 넓고 컸습니다. 그러나 성막이 불타 버린 장소는 매우 황폐하고 쓸쓸하게 보였습니다.
 

 

 

 

 

실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는 건물 하나가 들어서 있었는데 그 내부에는 작은 박물관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오리지날이라고 말하는 모자이크 표지판 하나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곳에 오는 자는 축복이 있을 것이라” 는 문구인데 이 문구가 곧 성막이 있었던 곳임을 증명한다고 했습니다.
 

 

 

성막의 역사를 보여주는 영상을 통해서 여기서 일어난 몇 가지의 역사적인 사건을 정리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불타 없어지는 성막의 최후의 모습이 몹시 마음을 아리게 했습니다.
 
걸어 내려오면서 다시 한번 비잔틴 시절에 교회당 안에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성막을 보면서 더 이상 보이는 성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성전의 비밀을 가진 우리 자신들을 보면서 감사하고 찬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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