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님 목회방 - 성지의 현장에서 바라 본 묵상 (14)

참빛교회

2015년 3월 11일 오후 01:28

성묘교회당을 나와 팔레스타인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 거리를 가다가 즉석에서 석류를 눌러서 생 쥬스를 만들어 파는 가게에 들려 한잔씩 사서 마셨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마음에 감동이 오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지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열어 놓았더니 신청 하는 사람이 차고 넘쳐서 다 기회를 얻지 못하고 몇 사람만 기분 좋은 섬김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여유의 시간에 나는 그 주위에 있는 3층 카페를 찾아가서 멋진 예루살렘 전경을 보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런 전경은 처음이었는데 구름까지 받쳐주어서 기분 좋은 사진 촬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다 보면, 남들이 보지 못하고 찍지 못한 것을 찍게 되면 나도 모르게 흥분이 될 때가 있습니다. 조금 흥분된 모습으로 성전 산 쪽으로 향하였습니다.



통곡의 벽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검색대를 통과해야만 했는데 천국 들어가는 검색대에서는 무엇을 검색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믿음이 준비되었을까? 아직도 교만함과 죄악이 내 속에 있어서 삐익 하는 경고음이 들리지는 않을까? 긴장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이슬람 사원인 황금돔이 우뚝 솟아 있지만 본래 이곳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던 모리아 산으로 솔로몬 왕 때에 이곳에다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의 침공으로 주전 586년에 파괴되고, 그 후에 바벨론에서 돌아 온 스룹바벨에 의해서 다시 재건하였었습니다. 그러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침공으로 파괴된 이 성전을 헤롯이 다시 건립하기 시작하여 주후 63년경에 완공하였으나 70년경에 로마가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파괴해 버렸습니다.

성전 산의 서쪽 벽에 일부분이 이스라엘 영역으로 남아 있는데 이곳을 통곡의 벽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다가 주후 638년에 이슬람의 칼리프였던 오마르는 솔로몬 성전 터 위에 바위 돔(황금돔) 사원을 건축하였고 성전 남쪽에는 엘 악사 사원을 건축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막13;2)” 는 말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이제는 겨우 남아있는 서쪽 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한이 맺힌 곳으로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통곡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바위와 바위 틈 사이에는 기도 쪽지가 빼곡히 박혀 있었습니다.



통곡의 벽 왼쪽 편으로 동굴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는 도서관이 있고 랍비들로 붐볐습니다. 그곳에서도 계속 머리를 흔들며 기도하는 모습들이 보였습니다. 이들의 기도와 통곡은 무엇을 위한 것일지를 생각하면서 이들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영접하게 되면 예수님이 오시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예루살렘 성에 있는 8개의 문중에 하나인 시온 문을 나와서 시온 산으로 올랐습니다.



시온산은 다윗이 여부스 족속에게서 빼앗은 성으로 다윗성이라고도 불렀습니다.(삼하5;7) 로마 시대가 끝나갈 무렵 유대인들에게 다윗의 묘로 알려진 이곳 입구에 회당이 들어섰는데, 이는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기 전에 언약궤를 기럇여아림에서 가져다 두었던 곳이 이곳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유래하여 시온산은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로 이해하였고 점점 영적인 의미를 지녀 구원의 산으로, 새 예루살렘으로 영성화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묘실이 있는 장소로 들어갔는데 랍비들이 오늘따라 얼마나 많은지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왕상 2;10절에 근거하여 다윗의 묘가 이곳에 있다고 확신합니다. 다윗의 묘 아래에 로마와 비잔틴과 십자군시대의 상징적인 바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이곳은 어느 장소보다도 신성시 되는 곳이고 꼭 방문해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숭앙받고 있는 왕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직도 다윗 왕국의 부활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메시아는 다윗 왕처럼 위대한 왕으로 오셔서 세계를 호령하는 강대국으로 나라를 세우리라는 것이 그들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다


윗왕의 묘실이 있는 2층에 오순절 성령강림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마가의 다락방이 있습니다.



이곳은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이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4세기에 비잔틴 교회가 세워졌었고 5세기에는 “모든 교회에 어머니, 시온교회” 가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6세기에는 비잔틴 시대의 “성 시온교회” 가 세워졌습니다.

지금의 교회는 1335년에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이곳을 재건하여 새롭게 건축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나의 마음에 성령님의 임재와 충만이 계속되고 있는지? 혹 나에게 성령의 임재가 충만하게 임할 다락방이 있는지? 나의 은밀한 다락방에는 무엇으로 충만하게 채워져 있는지를 묵상하였습니다.


시온 산을 더 오르면 베드로 통곡교회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들어가기 전에 흰놈의 골짜기와 기드론 골짜기를 내려다 볼 수 있는데 그곳에 유다가 스스로 목메어 죽은 뒤에 그가 받은 은전으로 토기장이에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로 삼은 아겔다마(피밭)가 보입니다.



아겔다마에는 세인트 오누프리우스 수도원이 세워져 있습니다. 좀 섬듯한 느낌이 들면서 무슨 수도원이 서 있을까? 를 생각했습니다.


베드로 통곡교회 뒤에 있는 벽면에는 예수님이 이 장소 지하에서 천장에 매어 달리셔서 고문을 받으신 유명한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675년 문서에 의하면 이곳에 주후 6세기 수도원교회가 있었는데 이곳은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가 통곡한 곳으로 확인했다고 합니다.



혹자는 이곳을 가야바의 집이었다고도 말을 합니다. 그 이유는 이곳 지하에 마구간과 물 저장소와 감옥이 있었기 때문에 교회가 세워졌다고 합니다.


몇 번에 소실과 건축을 반복하다가 1931년에야 오늘의 교회당으로 완성하였습니다.


이곳에 올 때마다 제 가슴을 흥분하게 만드는 곳은 교회당 바로 옆에 있는 예수님 당시에 돌길입니다.



아마 예수님은 이 길을 따라서 오르셨을 것이고 다시 빌라도에게로 갔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이 길을 개방했는데 지금은 줄을 쳐 놓고 출입을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산천도 많이 바뀌었는데 그때 돌들은 아직도 그대로 형체를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길속에서 예수님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말씀을 들으면서 문득 베드로를 주시했던 그 애잔한 눈동자를 바라보았습니다.

오늘 주님은 어떤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계실까? 를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모릅니다. 맹세컨대 모릅니다. 3번씩이나 부인한 베드로를 보면서 나는 서른 번 아니 더 많이 부인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를 아프게 고백했습니다. 어디선가 닭 울음소리가 내 양심을 아프게 깨웠습니다.


예루살렘 순례를 마치고 우리는 석양을 바라보면서 욥바를 향하여 달렸습니다. 한 바탕 비가 내렸습니다. 이스라엘에 와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스콜 이었습니다.

지중해 쪽 하늘이 어두워 비를 몰고 오는 것이 심상치가 않았는데 잠시 후에 맑아지면서 붉은 태양이 우리를 비추었습니다.

욥바에서 일몰은 보지는 못했지만 야경은 볼 수 있었습니다. 욥바하면 가장 많이 생각나는 사건이 하나님이 요나 선지자에게 니누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했을 때에 욥바로 내려가서 다시스로 도망가는 배를 탄 항구가 욥바입니다.

신약에 와서는 베드로가 이곳에서 죽은 다비다를 살렸으며 피장 시몬에 집에 머물러 있을 때에 가이사랴 백부장인 고넬료에 대한 환상을 보았던 곳입니다.

베드로 환상교회가 야경으로 보니 환상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우리 주위에 많은 고넬료 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마지막 환상으로 보여 준 메시지인 것 같았습니다.

피장 시몬의 집, 문 밖에 서서 살짝 베드로를 불러 보았습니다. 당신의 환상을 우리도 보고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욥바 해변의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걷다보니 갑자기 해운대의 맑고 깨끗한 해변이 그리워졌습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과 함께 집이 그리워지고 성도들의 얼굴들이 보이면서 빨리 교회로 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리움이란 떨어져 있어야 생기는 것 같습니다.


공항으로 향하는 우리의 마음은 이중적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벌써 다 지나가 버렸구나 하는 아쉬움과 함께 오는 허전한 마음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집에 간다는 안도감과 보고픔의 들뜬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에 다시 함께 할 여행을 서로 나누면서 여행이 얼마나 우리를 변화시키고 마음의 자유를 얻게 하는지도 깨달았습니다. 미

지의 세계를 향한 인간의 열망은 매우 건강한 창조력이고 긍정적인 자화상입니다. 내가 볼 수 있는 새롭고 큰 세계를 향한 첫 발걸음을 걸었던 젊은 성도들에게는 싱싱한 마음을 담아 준 것 같아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여행은 결코 사치도 낭비도 아닌 가장 큰 인생의 투자입니다. 나는 젊어서 은행 융자를 내어서 여행을 했던 사람입니다. 많이 가져서 하는 것이 여행이 아니라 처음부터 인생관을 그쪽으로 만들어 가는 삶이 여행의 자유와 행복을 아는 것입니다.


14번 글로서 성지 글을 마치고 남은 것은 에필로그입니다. 다녀오신 분들의 느낌을 글로 모으려고 합니다.

특히 어떤 하나님을 만나셨는지? 예수님을 어떻게 경험했는지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목사로서 성지순례 중에 할 이야기가 많았는데 제가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보충 설명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조금이나마 전체를 설명하고 나니 숙제를 마친 학생처럼 홀가분합니다.

그 동안 함께 하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축복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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